전유성은 한국 개그계의 선구자이자 방송작가, 연출가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유머 감각으로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 개그맨을 발굴한 장본인이기도 한데요. 최근 전해진 전유성 별세 소식으로 많은 이들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의 프로필, 사망 원인, 진미령과의 관계, 방송 활동까지 정리해보겠습니다.
1. 전유성 사망 소식



2025년 9월 25일 밤 9시 5분, 전유성은 전북대학교 병원에서 향년 76세로 눈을 감았습니다. 오랜 기간 건강 악화를 겪던 그는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장례는 한국방송코미디언협회 주관으로 진행되며, 생전 유언에 따라 화장 후 수목장으로 안치될 예정입니다. 그는 입원 전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영상 편지를 남기며, 삶의 끝에서도 웃음과 격려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2. 사망 원인과 건강 상태
전유성의 사망 원인은 양측 폐 기흉에 따른 호흡 기능 저하와 복합적 합병증입니다. 이미 2024년부터 심장 부정맥, 폐렴, 코로나19 후유증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있었고, 2025년 7월에는 긴급 시술을 받을 만큼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수술이 어려운 상태였던 만큼 병원 측은 보존적 치료를 시도했으나 회복은 불가능했습니다.
3. 전유성 프로필과 생애



1949년 1월 28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태어난 전유성은 서라벌예술고와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습니다. 키 175cm, 혈액형은 O형입니다. 1969년 TBC 방송작가로 데뷔하며 방송계에 입문했고, 이후 ‘쑈쑈쑈’, ‘쇼 비디오자키’, ‘유머 1번지’ 등 수많은 프로그램의 기획과 대본을 맡았습니다. 본인의 이름보다는 후배 양성과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역할이 더욱 조명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4. 진미령과의 동거 및 결별
가수 진미령과는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약 10년간 동거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둘은 1958년생(진미령), 1949년생(전유성)으로 9세 차이가 있었고, 음악과 유머라는 공통분모로 예술적 동반자처럼 지냈습니다. 하지만 장기간의 생활 습관 차이, 자주 떨어져 지내야 했던 현실적 이유로 결국 2011년 결별을 택했습니다. 이들의 이별은 당시에도 조용히 마무리되었고, 이후 재결합설은 없었습니다.
5. 방송계 공헌과 유산



전유성은 국내 방송에서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입니다. 기존 희극인이라는 표현을 넘어 전문 코미디 장르를 대중문화로 정착시킨 데 그의 기여가 컸습니다. 이경규, 이성미, 심형래 등 수많은 스타 개그맨이 전유성의 손을 거쳐 성장했습니다. ‘이경규를 발굴한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은 게 아닙니다. 그는 말년에도 소극장, 지역 문화공간 등에서 젊은 창작자들과의 교류를 지속해왔습니다.
6. 딸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
전유성은 한 명의 딸을 두었고, 사망 당시 병실에서 곁을 지킨 것도 외동딸이었습니다. 그는 평소 가족 이야기보다는 작품과 방송 활동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지인들에 따르면 딸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고 전해집니다. 딸의 결혼식에 진미령이 불참하면서 당시 언론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 전유성 프로필 요약
- 이름: 전유성
- 출생: 1949년 1월 28일
- 사망: 2025년 9월 25일 (향년 76세)
- 출생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 신체: 175cm / O형
- 학력: 서라벌예술고, 서라벌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
- 가족: 전부인 진미령, 외동딸 1명
- 소속: 방송작가, 연출가, 코미디 창작자
- 대표 활동: 유머1번지, 쇼 비디오자키, 개그맨 용어 도입
- 특이사항: 수목장 유언, 개그계 후배 양성자
마무리 정리



전유성은 한국 대중 코미디의 방향을 설계한 선구자였습니다. 단순한 개그맨이 아닌, 방송 기획자이자 콘텐츠 제작자,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길을 닦아준 멘토였습니다. 그의 별세는 한 시대의 마침표처럼 느껴지지만, 남긴 발자취는 후배들의 웃음 속에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