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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대장 꼬꼬무 전설이 된 산악인 박영석

다양한이슈 2025. 10. 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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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정신이란 무엇일까요? 그 질문에 가장 깊이 답을 남긴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산악인 박영석입니다. 누군가는 그를 ‘대한민국 등반사의 주춧돌’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정상을 넘어선 사람'이라 기억하죠. 그가 걸어온 길, 그리고 마지막 여정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박영석 대장의 생애와 마지막 원정을 중심으로 그의 업적과 철학을 되짚어 보려 합니다.

1. 서울 태생의 소년, 세계 최고봉으로 향하다

박영석 대장

 

1963년 11월 2일, 서울에서 태어난 박영석은 학창시절부터 스포츠에 열정을 가졌습니다. 오산고를 졸업한 뒤, 동국대 체육교육과에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쳤고, 대학교 재학 중 등산 동아리를 통해 산과 인연을 맺게 되었죠. 그 시작은 작았지만, 이후 그는 세계의 고봉을 무대 삼아 수많은 ‘첫 번째’를 이뤄냈습니다.

2. 세계 유일, 산악 그랜드슬램 달성자

박영석 대장

 

그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인류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히 높은 산을 오르는 걸 넘어, 인간이 갈 수 있는 ‘극한의 지점’을 모두 밟았다는 의미인데요. 그랜드슬램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 7대륙 최고봉 완등 - 히말라야 14좌 정복 - 북극점, 남극점, 에베레스트 등정 이 세 가지를 모두 이룬 인물은 세계적으로 박영석 단 한 명뿐입니다.

3. 남서벽 신루트, 산악계에 새 역사 쓰다

박영석 대장

 

2001년, 그는 히말라야에서도 가장 위험하다고 평가받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자신만의 새로운 길, 즉 신루트를 개척했습니다. 이곳은 수직에 가까운 절벽과 기상 변수로 인해 전 세계 산악인들 사이에서도 도전이 거의 이뤄지지 않던 구간이었죠. 하지만 박영석과 그의 팀은 기존 노선을 따르지 않고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이 벽을 넘어섰고, 이는 지금도 세계 산악계에서 '불가능을 이룬 도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4. 안나푸르나에서 멈춘 발걸음

박영석 대장

 

2011년 10월 18일, 그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눈사태를 만나 실종되었습니다. 함께하던 동료 신동민, 강기석과의 마지막 교신 이후 연락이 끊겼고, 10일 이상 이어진 구조 작업에도 끝내 그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그가 머무르던 고도는 해발 약 5,700m. 그곳에서 그는 영원한 휴식을 맞이하게 되었고, 등산복 하나 없이 떠났던 그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가슴에 깊이 남게 되었죠.

5. 가족과 재단, 그리고 남겨진 이름

박영석 대장

 

박영석 대장은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단순한 등산 기록을 넘어 도전, 용기, 책임이라는 가치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그가 세운 ‘박영석 탐험문화재단’은 현재도 청소년·청년 산악인들을 대상으로 교육, 지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그의 철학은 후배들의 원정 속에서 계속 살아 숨 쉬고 있어요. 산 위에서 멈춘 걸음은 멈췄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오르고 있는 셈입니다.

✔️ 박영석 대장 프로필 정리

  • 이름: 박영석 (Young Seok Park)
  • 출생: 1963년 11월 2일, 서울 출신
  • 사망: 2011년 10월 18일, 안나푸르나 남벽 실종
  • 학력: 동국대 체육교육과 석사
  • 주요 업적: 산악 그랜드슬램, 남서벽 신루트 개척
  • 유산: 박영석 탐험문화재단 운영
  • 가족: 배우자, 슬하 2남
  • 상징: 세계 유일의 산악 그랜드슬래머

마무리하며

박영석 대장

 

박영석 대장은 그저 높은 곳을 오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시도하지 않은 길을 선택했고, 그 길에 의미를 더한 인물이었죠. 그가 남긴 기록과 정신은 지금도 누군가의 도전 앞에서 힘이 되어주고 있을 겁니다. 박영석이라는 이름, 그 자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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